“전두환 전 대통령, 쿠데타를 그린 작품…모두 공감’
법안 하나 통과 못시키는 공무원들..
국민세금만 받고 ‘무사안일’주의
차라리 ‘서울의 봄’이 재현되길 바라는 국민 마음이 투영됐을지
서울의 봄,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우리나라 근대사를 뒤 바꿔 놓았던 역사적인 날, 쿠데타의 밤을 그린 작품이다. 전두광이라고 가리워진 이름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권력을 향한 집요함과 영리함, 잔혹함, 교활함, 사람을 어떻게 이용하는 지, 온갖 악랄한 인간상이 잘 그려져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렇게나 공감이 가고, 다시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래도 지금 우리나라의 바람 빠진 듯한 정치 행태 때문 아닐까?
전두환 전 대통령 당시 그나마 국가라는 명분을 끼고, 나라 걱정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전두환 씨야 그 이후 어찌됐든 일본에 차관을 요구하는 등 나름 소신있는 행동을 했다는 역사를 접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설명하면, 당시 차관은 일본에 당한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노역 등 치욕의 역사와 바꿔 먹은 자신의 공과를 위한 엿. 지나간 이야기야 어차피 바꾸지도 못하고, 아픔은 되새겨 배우는 것을 족하다. 중요한 것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엄연한 진실에 우리는 다시 한번 겸손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정치인들 과거 우리의 조상이나 전 세대들에 비해 너무나도 나태하다. 나라가 어디있는지, 이태신 극 중인물이 ‘조국’이라고 대사를 던질 때 가슴이 뜨거워졌으나 과연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 조국이라는 단어에 가슴 시릴 사람이 몇이나 될지, 그리고 그들이 만들고, 자기들이기 이전투구하다가 버려버리는 수많은 법안들, 국민들의 어려움과 이를 분석해 중지가 모아지고, 수십억들의 자원과 에너지가 오랜 시간 모였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최종 결정자 몇은 도대체 정신이 어디붙어있는지, 자기들 입장에 따라, 소위 언론 보도대로 누군가에게 돈을 먹었는지, 아니면 무슨 이유로 국민 수천만의 잇권과 삶이 걸련 법안들에 기어이 기를 쓰고 부결을 족족이 시키는 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들에게 무엇이 중요한 걸까? 코로나19 피해자 법안이 최근 내가 본 가장 처절한 참상이다.
엔데믹, 엔데믹 하는데, 웃기는 소리다, 유럽은 무상의료와 어느 선의 증거만 있다면 일단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는 것이고, 그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무원과 국회, 정부 자체까지 무슨 자신들도 이해 못하는 과학 들먹거리면서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길거리에 주저앉고 사지가 마비되고 머리가 꺠지는 고통가운데 수천명이 허우적대도, 그 놈의 법안 한줄 합의하기가, 보상금 몇 푼 지급하는게 자기 밥줄 지키는 일보다 어렵나보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감염병은 언젠가 반복된다. 또 다시 이 같은 혼란이 닥치기 전에, 관련 법안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할 듯 하다.
못할 게 뻔하지만 말이다. 이태원 참사에 자식을 읽은 고위직 공무원까지 한국 행정을 책임지는 똑같은 국민이 트라우마라는 핑계로 밥그릇 뒤로 숨어 1년 넘어 숨어지내는 판국이니, 점심시간은 꼬박 챙기고, 틈만나면 ‘언제 놀러가나’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작태를 매일 접하면서, 참 어처구니가 없단 생각 뿐이고, 이는 내가 여려 시민들에게 질의를 던져본 결과 모두 공감하는 바다. 정말 세금이 아깝다. 세금의 주인은 국민인데, 왜 국민 녹을 먹으면서 돈 주는 사장에게 깍듯하지 못 할까?.
영화를 보며, 이태신(이순신 같은 이름이었다) 같은 사람이 현재 시대에도 있을까 싶지만, 자기 감정과 생활만 소중하고, 월급 주는 국민 살림은 ‘나몰라라’하는 그런 나라직 공무원들이 계속 이런 행태를 유지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정말 암울할 수 밖에 없다. 역으로 상상력을 펼쳐보자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어쩌면 <서울의 봄>같은 터닝포인트를 찍을 수 있는 ‘혁명의 날’이 다시 오길 바랄지도 모를 일이다. 큰 충격이 있지 않는 한 공무원들의 밥그릇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